뉴시스아이즈]손대선의 세상 보기-노숙인 강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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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0회 작성일 20-03-01 00:21본문
뉴시스아이즈]손대선의 세상 보기-노숙인 강씨의 하루
뉴시스 | 기사입력 2008.12.16 10:37
【서울=뉴시스】
5일 오전 5시30분께 수원역사 2층. 얕은 잠에 빠져있던 30대의 강모씨는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출근을 위해 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살아있는 자명종이다.
역사 이곳저곳에서 웅크려 잠을 자던 노숙인들이 잠을 털고 일어나 아직 어둠이 밀려나지 않은 역 광장으로 나섰다. 자원봉사를 나온 A교회의 교인들이 추운 날씨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을 나눠주었다. 강씨는 온몸을 바늘처럼 찌르는 새벽 한기를 라면국물로 털어내려 애썼다.
강씨는 추위를 피해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 출근길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홍해바다처럼 양쪽으로 갈라진다. 익숙해진 회피가 그에게는 되레 편하게 느껴졌다.
노숙인 동료들이 손짓을 했다. 역 광장에서 자선단체 관계자들이 방한점퍼를 나눠준단다. 그는 고맙게 받았지만 곧바로 노숙인을 상대로 한 옷장사에게 3000원을 받고 점퍼를 되팔았다.
◇ 밥을 따라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강씨의 행선지는 오로지 '밥'에 의해 결정된다. 어느 교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주고, 어느 역 근처에서 봉사단체들이 따뜻한 고깃국을 퍼주는지가 관심사의 전부다.
청량리 근처의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밥퍼'에서 아침 한 끼를 때운 그는 서대문구에 있는 구세군 브릿지 센터를 향했다. 역시 점심밥을 위해서다. 배를 채운 그는 낯익은 동료 노숙인들과 찬으로 나온 김치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점퍼를 팔아 손에 쥔 돈이 술값으로 사라졌다.
지난 가을 한 교회단체에서 준, 때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이제는 거북이등처럼 딱딱해진 점퍼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공사장 한구석에 잠들었다.
브릿지 센터에는 오전 7시께 아침식사가 때가 되면 500여 명이 몰려들고, 오후 5시30분께 저녁식사 무렵이면 400여 명이 찾는다. 가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목욕서비스를 하면 낮에도 100명이 이곳을 찾는다. 하루 1000명의 노숙인들이 이곳에서 밥을 먹고, 몸을 씻는 셈이다.
구세군 브릿지 센터 관계자는 "숫자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보다 노숙인들이 확실히 늘어난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늘어나는 노숙인들로 인해 배식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 사는 게 지옥, 자존감은 없어진지 오래
강씨의 말은 내용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의 대화는 속사포처럼 쉼 없이 계속되다가, 이내 끝없는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기억은 끈 풀린 연 같아서 한곳에 집중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나이도 가늠하지 못했다. 가끔 그는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대상없는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은 대략 10여 년 전. 그는 어렸을 때 동생과 함께 부모로부터 버려져 고아로 자라왔다고 한다.
강씨는 유일한 혈육인 동생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핍진한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동생이 몇 해 전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그의 삶은 절망으로 도색됐다.
시니컬한 성격이지만 강씨는 동료 노숙인들과 종종 원하지 않게 이별하는 것을 슬퍼했다. 20여 년 동안 많은 친구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반인들은 흔히 노숙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지만 노숙인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선입견"이라고 말한다.
다시서기센터 임영인 신부는 "결핵이나 간경화 등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질병으로 인해 사회로의 복귀는커녕 사회의 외곽에서도 영원히 격리되는 것이다.
이제 그는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갈 뿐이다. 자존감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 언제 빠져나올지 기약 없어
강씨가 자신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수원역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밤 11시께. 이맘때면 겨울철 노숙인의 동사를 막기 위해 종교단체에서 벌이는 일종의 야간순찰인 '아웃리치(out-reach)'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아웃리치 봉사자들이 나눠주는 따뜻한 보리차가 마치 수면제 같단다. 어쩌다 어여쁜 사회복지사가 한잔 따라주면 합환주라도 마신 것처럼 아찔해져서 허허 웃고 만다.
후루룩 후루룩 혀가 데일 듯 말듯 마셔보면 내장이 토시라도 낀 것처럼 훈훈해진다. 강씨는 만족한다.
자정이 되어 퇴근길 발걸음이 잦아들면 그는 겨우 잠이 든다. 오랜 수치를 덮듯 낡은 침낭을 이마까지 끌어당긴다.
브릿지 센터 관계자는 "요즘 들어 노숙인들의 연령이 다양화됐다"며 "과거에는 실직자 같은 30~40대 초반이 주였는데 이제는 20대부터 노인층까지 노숙인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관계가 약화되면서 심리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며 "강씨 같은 경우를 두고 '회전문'식 노숙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수년째 노숙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이들의 재활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8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노숙인은 4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재활의지를 그나마 갖고 노숙인 쉼터에서 머무는 이들이 3000명.
강씨처럼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회전문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12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손대선 기자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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