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이 파는 잡지 英‘빅 이슈’ 국내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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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1회 작성일 20-02-29 22:15본문
최준영 성프란시스大 교수 ‘한국판’ 추진
노숙인들에게 판매를 맡겨 그들의 자활을 돕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인 ‘빅 이슈(The Big Issue)’의 국내 발행이 추진된다. 빅 이슈는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돼 현재 28개국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노숙인 자활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올 연말 빅 이슈의 한국판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은 대한성공회가 설립한 노숙인 인문학 교육기관인 성프란시스대학의 최준영(42) 교수. 최 교수는 최근 런던을 방문해 ‘빅 이슈 재단’관계자들과 한국판 발행에 관해 논의하고, 노숙인 벤더(판매원)들이 판매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왔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해오다가 빅 이슈의 발행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 외국에서도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직업교육 등 각종 지원사업을 해왔지만 노숙인들을 자활로 이끄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숙인들에게 우선돼야 할 것이 ‘자존감 회복’이라는 얼 쇼리스(‘희망의 인문학’ 저자)의 ‘클레멘트 코스’가 관심을 모았고, 이를 벤치마킹한 노숙인 인문학 교육과정이 국내에도 생겨났다.
그동안 성프란시스대학은 4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그들 모두 정착생활을 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대부분 신용불량 혹은 주민등록 말소 상태인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은 없었다. 결국 그들의 자활을 돕는 현실적 방안이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빅 이슈를 생각하게 됐다.”
―이번에 직접 런던에서 빅 이슈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는데.
“그간 막연하던 빅 이슈의 실체를 보았고, 향후 한국판 창간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많이 배웠다. 제작 인원과 비용문제가 자원봉사시스템으로 해결되고 있는 점, 각계 전문가급 프리랜서들이 정기적으로 기사를 제공해주는 점 등이 인상적이었다.
16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벤더에 대한 교육과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관공서 등과의 협조체계도 구축돼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벤더와 빅 이슈 직원 대부분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으며, 영국 젊은이들에게도 ‘빅 이슈 컴퍼니’는 비록 임금은 적지만 다니고 싶은 직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더들도 직접 만나보았을 텐데.
“노동의 권리, 가치, 신성함 같은 걸 느꼈다. 벤더들이 목에 걸고 있는 ID카드(신분증)에는 ‘워킹, 낫 베깅(Working, Not Begging·구걸이 아니라 일하는 중이다)’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거리에서 만난 초로의 한 벤더는 한쪽 다리가 불구였지만 목발을 짚고 돌아다니면서 명랑한 표정과 재미난 목소리로 ‘빅 이슈, 빅 이슈, 빅 이슈!’라고 외치며 판매를 했다.
그는 ‘앉으면 구걸이지만, 서서 판매하면 일(노동)이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에게서 빅 이슈를 산 20대 여성은 ‘저분이 만약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 거다. 나는 저분이 눈에 띌 때마다 빅 이슈를 산다’고 말했다. ‘일’과 ‘구걸’의 구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할까, 감동적이었다.”
―빅 이슈 한국판 발행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단순히 잡지를 창간하는 일이라면, 돈(창간비용)의 문제로 환원되겠지만, 빅 이슈의 발행은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일부 소장 문학평론가들이 앞장서서 문인들의 참여를 유도해주고 있고, 노숙인 관련 단체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창간에 적극적이다. ‘아름다운재단’에선 실무선에서 검토되고 있다. 4월말쯤 문인, 소외계층 인문학강좌 참여 교수들, 언론인, 종교인, 경제인, 시민단체 및 노숙인 관련단체 활동가 등으로 ‘창간준비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다. 올 연말 쯤 창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의식의 변화와 현실적인 펀딩(funding)이 난관이 될 것 같다.
“시민이 외면하는 빅 이슈는 존재가치가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지식인들과 함께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판매형태를 고려할 때 서울시 및 관공서와 긴밀한 협조체계가 불가피하다. 콘텐츠에선 문인들이 신작을 제공해주는 등 풍성한 읽을거리와 참신한 기획으로 승부할 수 있다고 본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자서전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에 나오는 ‘지금은 비록 혼자 꾸는 꿈이지만 머지않아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이 될 것’으로 믿는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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