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여성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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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20-03-03 01:05본문
'홈리스 여성들’의 세계
이름은 존재를 알리는 첫 방편이다. 따라서 어떤 존재에게 이름이 있
는가 없는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이름이 붙여지는가 하는 문제
는 매우 중요하다. IMF 경제위기 이전에 거리의 사람들에게 붙여진 공
식 이름은 ‘부랑인’이나 ‘행려병자’였다. 부랑인들은 “시민생활
의 명랑화와 범법자 등 불순분자의 활동을 봉쇄(내무부 훈령 410호)”
하기 위한 일환으로 갱생원에 강제로 수용됐다. 1987년 보건복지부로
관할기관이 바뀌면서 처우가 개선되기는 했지만, 수용 위주의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IMF 이후, 거리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상황
은 크게 달라졌다. 정부와 사회복지단체들은 이들을 ‘실직노숙자’라
는 이름으로 불렀고, 기존 부랑인 정책과는 구별된 정책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최근 ‘놈 자(者)’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노숙인’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실업’은 노숙인을 바
라보는 중요한 코드다.
‘실직노숙인’ 범주 벗어나 있는 ‘홈리스 여성’
하지만 ‘실직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도저히 이들의 상태를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안정적인 주거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도
는 ‘홈리스 여성’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대부분 노동을 하고 있으
며, 노상생활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의 실상에는 무관심
한 채, 남성들의 실상만을 설명해주고 있는 ‘노숙’의 틀로만 이들
을 보려 한다. 홈리스 여성을 취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는 모 방송
국 기자는 “여성 노숙자들의 문제를 폭로하려는 좋은 취지로 현장에
나왔는데, 영상에 담을 만한 아이템이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엉뚱
한 문을 열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때 성매매(일명 꽃꼬지)를 하는 거리의 여성들이 사회이슈로 떠오
른 적이 있다. 물론 거리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홈리스 여성 중 극히 일부가 노상생활을 하고 있고, 다시
이들 중 극소수만이 생계를 위한 성매매를 한다. 노숙인 쉼터 화엄동
산에서 일하는 임동숙씨는, “성매매를 하는 1명의 여성이 다른 99명
의 홈리스 여성들보다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어서 관심을 받는 게
아니에요. 단지 ‘가출, 노숙, 성매매’에 이르는 과정이 자극적인 가
십거리가 되기 때문이죠. 그런 관심은 당사자에게나 전체 홈리스 여성
에게나 도움이 안 되요”라고 지적했다.
홈리스 여성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업’과 ‘노숙’
이라는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들 여성
이 겪는 고통은 대부분 가정폭력과 빈곤, 그리고 불안정한 노동 문제
와 맞닿아 있다. 홈리스 여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리가 아니라 가정
폭력 쉼터, 노숙인 여성 쉼터나 먹고 자는 식당, 숙식이 가능한 다방
과 술집, 공장 기숙사, 그리고 이들이 파출부나 베이비시터로 고용돼
있는 가정집을 찾아가야 한다.
이혼 후 상경, 여관과 찜질방 전전
구민경(가명, 48)씨는 현재 노숙인 여성을 위한 W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민경씨의 남편은 변변한 일자리 없이 허구한 날 그녀에게 폭력
을 휘둘렀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고리대금업자라 가정형편은 넉넉했지
만, 대신 매일 손님들로 복작거려서 하루 종일 뒷바라지를 해야 했
다. 민경씨는 가사노동과 가정폭력을 참다못해 결혼 11년 째 되는 해
에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제 발로 나가는 거니까 위자료는 한 푼도 줄 수 없대요. 그
래서 제대로 보상도 못 받았어요. 남편이 부자면 뭐해요. 이혼을 하
고 나니 저는 빈털터리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원래부터
가난했어요. 그걸 11년 후에야 깨달았을 뿐이죠. 그것도 모르고 시키
는 대로 일만했으니 저도 참 바보죠.”
그 후 민경씨는 옷가지를 싸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벼룩시장
을 보고 찾아간 식당에서 한동안 숙식을 했지만 그 생활도 고역이었
다.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 나면 한 달에 떨어지는 돈이 고작
100만원 남짓이에요. 내 집이 있다면 들어가서 편히 쉬기라도 하겠지
만, 식당에서 생활하다 보니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요. 사실 24시간 일
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예전의 삶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
더라고요.”
식당에서 나온 민경씨는 여관과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모아놓
은 돈이 다 떨어지게 되자 거리로 나오게 됐다. 다행히 아웃리치(야
간 거리상담)를 나온 서울역 상담소 직원을 통해 여성쉼터를 소개 받
았다. 그리고 3개월째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편폭력 피해 가출, 보호시설 퇴소
김진숙(가명, 45)씨는 2년 동안 S가족쉼터에서 생활하다가 곧 자립을
앞두고 있다. 진숙씨는 전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
런데 알고 보니 남편은 도박과 경마에 빠져 사는 사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채업자가 찾아와 진숙씨에게 몇 백, 몇 천에 달하는 돈
을 요구했다. 세탁소 일로는 이자를 갚기에도 벅찼다. 남편에게 도박
을 그만하라고 말을 하면, 남편은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진숙씨를 때
렸다. 진숙씨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도 폭력은 계속됐다.
“출산을 하고 100일이 안 되었을 때였죠. 그 날도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와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만 옆에 누워있는 아기에
게 남편의 주먹이 헛나간 거예요. 아이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는데 정
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요.” 그날 밤 진숙씨는 아이와 함께 가
출을 했다. 한동안 가정폭력 쉼터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가정폭력 쉼
터는 단기보호시설이기 때문에 몇 달 후에 퇴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영등포역 상담소를 통해 현재 있는 가족
노숙인 쉼터를 소개 받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대한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이혼소송을 했어
요. 남편이 계속 이혼을 거부했기 때문에 1년 동안 7번이나 법원에 출
두해야 했죠.” 진숙씨는 올해 5월에 고등법원으로부터 이혼 확정판결
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력이 없는 남편에게 위자료나 양육비를 받으리
라고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남편이 현재 살고 있는 영구임대아
파트가 진숙씨 명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밀린 임대료와 관리
비를 진숙씨가 내야 할 판이다.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 파출부 구직
이경희(가명, 38)씨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얼마 전 합의이혼을 하고
친구네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경희씨가 결혼을 할 때에 친정
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친정이 꽤 잘 사는데도 경희씨가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남남이니까요.
나이 들어서 손 벌리기도 뭣하잖아요.”
경희씨는 직장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았다. 하지만 나이
도 있고, 오랫동안 가사노동만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
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돈을 벌어야 해요. 가정집에 들어가 파출부
로 일하면 13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대요. 그래서 아이는 잠시 친구
네 집에 맡겨두려고요. 저까지 얹혀살기는 미안하잖아요.”
여성노숙인 세계, 남성노숙인과 달라
“여성 노숙인의 세계는 남성 노숙인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
죠. 여성들은 노숙에 이르기 전에 비공식적 노동시장에 빠르게 흡수되
어 버려요. 서글픈 현실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
력과 육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용되기 마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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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d2e473e_홈리스_여성들’의_세계.hwp (17.0K) 0회 다운로드 | DATE : 2020-03-03 0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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