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그리며 자원봉사하는 32세 노숙인의 희망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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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3회 작성일 20-03-02 23:44본문
딸 그리며 자원봉사하는 32세 노숙인의 희망찾기
서울역에서 노숙인 대상으로 커피 타주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32세의 문대호(가명) 씨는 일정한 거처가 없다. 노숙인이 노숙인에게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올해 세 살 난 딸에게 빨리 연락하기 위함이다.
[[ 노숙인에게 커피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문씨. 문씨의 앞날에 햇살이 가득했으면..]]
1년여 전 경기도 수원에 살던 문씨는 몇 달 동안 일을 구하지 못했다. 월 75만원짜리 냉동 포장육 운반 일은 두 달만에 그만둔 상태였다. 10년 전 IMF 사태 당시에도 한 달에 100만원은 받던 일자리였다. 문씨가 노는 동안 아내는 월급 120만원을 받고 인근 대기업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 사진과 옷가지만 들고 서울로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은 갈수록 늘어났다. 결국 문씨는 아내의 요구대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두 살 먹은 딸과 아내를 남겨두고, 가방에 아이 사진과 몇 벌의 옷만 넣은 채 집을 나왔다. 충남 서산의 고향에서 자영업을 하는 어머니에게는 찾아갈 면목이 없었다. “잘 지낸다”는 말씀만 드리고 연락을 끊었다.
세상이 원망스럽기보다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일자리가 있을 법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서울역 대합실이 문씨의 첫 안식처였다. 아는 사람은 없었고 연락할 곳도 막막했다. 배가 고팠는데 주변에 있던 노숙인들이 어디론가 몰려갔다. 부랑인 대상의 단체 급식을 하는 곳이었다. 문씨는 여기서 15일간 밥을 얻어먹었다.
잠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잤다. 초겨울이라 견딜 만했다고 한다.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없어 외로웠다. 예전엔 노숙인들이 무능해 보여서 싫었지만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역 등에서 노숙인들을 돌보고 재활을 지원하는 단체 ‘성공회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이하 ‘다시서기 센터’)의 직원이 며칠 동안 문씨를 눈여겨봤다. “갈 데가 없냐”고 묻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센터에서 처음 상담받을 때만 해도 문씨는 자기 생애에 극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술·담배를 하지 않고 신앙심이 깊은 문씨에게 센터는 상대적으로 편했지만, 20일간 입소하면 10일은 밖에서 지내야 재입소할 수 있었다. 대기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 10일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돈을 벌어 쪽방촌이나 고시원 등에서 지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서울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재활 프로그램과 자원봉사활동 시작
다시서기 센터의 상담원들은 문씨에게 10개월 예정의 재활 프로그램을 권했다. 일주일 중 5일간 한밤중에 서울역 광장을 청소하고, 새벽이나 아침이나 저녁 때 노숙인들에게 커피를 타주는 일이다. 특히 겨울철의 새벽에는 커피 외에도 따뜻한 보온병들을 수십 개 준비한다. 이 시간대에 동사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씨는 월 40만원의 재활 급료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남을 돕는다는 보람 때문에 뿌듯했다. 뚜렷한 인생의 목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재활과정이 모두 끝난 뒤에도 문씨는 노숙인 대상의 자원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대책 없이 떠도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즘은 그들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센터의 직원들은 문씨에게 재활용 사회적기업을 추천했다. 사회적기업이란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문씨 같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소외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문씨는 경기도 화성의 폐기물 재활용 처리장에서 월 8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일했다. 회사 동료 중에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아 잘 지낼 수 있었고, 일도 힘들지 않았다. 잠자리와 식사는 회사가 제공했다.
이번에도 문씨의 재직 기간은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입사 후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딸아이와 아내가 보고 싶었다. 딸이 그리울 때마다 사진을 꺼냈지만, 언젠가 가방을 도둑맞아 사진까지 잃어버렸다. 문씨는 전화를 받은 아내에게 일자리를 찾았다는 얘기와 얼마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이혼한 아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문씨는 아내가 밉다기보다 자신이 비참하고 한심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한동안 남산을 찾아가 운동하고, 남산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자원봉사는 계속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월 130만원 받는 일자리와 월세방 마련이 인생 목표
문씨가 정한 인생의 ‘뚜렷한’ 목표는 이렇다. 월 130만원 정도 되는 단순노무직을 얻어 꾸준히 일하고, 싼 보증금이라도 월세를 낼 수 있는 집에서 사는 것. 좀 더 삶이 여유로워지면 18평쯤 되는 아파트를 얻고 싶단다.
요즘 문씨는 딸과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 꾹 참고 연락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자랑스럽지 않기 때문이란다. 안정이 됐을 때 찾아가겠단다.
직장을 잡고 첫 월급을 타면 엄마와 딸의 선물부터 마련할 작정이다. 그 때 문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공중전화 박스의 수화기를 들고(핸드폰이 없다) 집 전화번호를 누를 것이다. 그 때가 이번 설은 아니었지만 올해의 추석보다는 빠를 것이라고 문씨는 확신하고 있다. <끝>
2009년 4월3일(금)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서울역에서 노숙인 대상으로 커피 타주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32세의 문대호(가명) 씨는 일정한 거처가 없다. 노숙인이 노숙인에게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올해 세 살 난 딸에게 빨리 연락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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