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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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7회 작성일 20-03-02 23:39본문
노숙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노숙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오직 노숙인에게만 구할 수 있는 잡지, ‘빅이슈’
아침 출근길,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1호선. 비좁은 공간에서도 무가지 신문을 작게 접어 든 위성도시의 평범한 시민들이 서울로 향한다.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모여드는 헤모글로빈처럼.
각종 고시준비생들이 노량진역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나면, 줄줄이 연결된 전철 10량이 강바람을 가르며 한강철교를 난다. 이 때쯤이면 승객들의 틈을 헤치며 나타나는 눈에 익은 인간군상이 있다. ‘폐지 수거’ 빈민. ‘자본주의 사회의 직업적 자유’라는 ‘형용모순’에 갇혀있는 이들은, 수도의 심장부로 향하던 시민들이 연예, 스포츠, 정치가십 등을 섭취하고 난 뒤 버린 무가지 신문을 수거한다.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자본제지만 이들이 실제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직업의 ‘내용’이 아닌 ‘형식’상의 자유에 가깝다. ‘형용모순’에 갇힌 노동자는 ‘폐지 수거’ 빈민에 국한하지 않는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살아가는 현대인 대다수는 진정 자유로운가. 부유하는 신인류, ‘노숙인’의 등장은 제3자의 소설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형용모순
아이엠에프 경제신탁통치 1년을 경과하던 98년 세밑의 ‘크리스마스이브’. 노숙인 쉼터를 취재 중이던 기자는 ‘크리스마슨데 뭐 하냐’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들려온 수화기 저편의 음성은, 아랫목 이불속의 발가락처럼 꼼지락대고 있긴 했지만 무척 진지했다.
“노숙자들도 크리스마스 때는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하고 같이 지내지 않아?”
“…….”
그 해 겨울은 정말 언 발에 오줌 누고 싶을 정도로, 온 세상이 미쳐 버릴 듯 추웠다.
진화하는 노숙인
지나온 이야기를 할 만큼, 노숙인 관련 이슈는 누군가에겐 ‘전래동화’나 ‘공상소설’ 속 이야기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두고 나타나는 입장차만큼이나 그 스펙트럼이 예상 외로 넓다. ‘진실’과는 이미 좁히기 힘든 거리가 있다. 이제 와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무래도 수화기 저편 인물의 인식 속엔 ‘노숙자’ 개념이 직업인으로 자리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위의 에피소드를 서로 다른 정간물에 세 번째 소개하는 동안 햇수로 3년이 흘렀지만, 기자의 심리적 겨울은 여전히 길고, 여전히 춥다.
빈민계급의 노동자성을 취재하던 중 기자가 만난 사회복지전담공무원 A씨(7년차)는 그 겨울이 더욱 길어졌음을 시사했다. “요즘 수급권 관련 민원 폭주로 경제난을 실감하고 있다”는 게 그의 말. 다른 지자체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 B씨(4년차)도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이 있지만, 몇 년 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복지 전달체계 최일선에서 복무하는 공공행정 조직의 사회복지사 입에서 나온 말이니만큼, 그 몇 년 새 더욱 단단해진 경기를 실감할만하다. 최근 이봉재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가 발표한 노숙인 관련 조사만 봐도 그렇다. 4분의 1 이상(27.4%)이 노숙인이 된 지 1년 미만이었던 것. “소득 양극화와 저소득층의 빈곤 심화문제, 최근의 경기 불황 탓에 노숙자 수가 늘었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몇 년 새 변한 건 심리적 계절만이 아니다. 이에 따라 노숙인은 ‘진화’하고 있고, 관련 활동도 진화하고 있다. 이런 진화의 과정 속에 ‘외제 명품 잡지’인 ‘빅이슈’를 한국에서도 만들려는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정보범람 시대니, ‘빅이슈’의 역사나 사회정치적 의제 등 자세한 설명은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한국판 ‘빅이슈’를 함께 하고 싶다면 ‘창간준비 모임 카페’(http://cafe.daum.net/2bi)에 가입한 뒤 가끔씩 잠망경을 올려 봐도 되고, 인터넷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수요정기모임’에 참석하면 된다. 카페를 주도하는 최준영 교수(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실천인문학센터 운영위원)는 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의 등 다년간의 노숙인 인테이크 노하우를 갖춘 인물이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적 의미의 전문사례관리 영역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대상자와의 라포 형성과 감정이입을 넘어 한 몸처럼 동화돼 실천적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노숙인의 노동자성
‘Street Trade, Not Street Aid’(원조 받는 것이 아니라 영업하고 있다)라는 제호 언저리의 문구는 ‘빅이슈’의 정신을 상징한다. 원가를 제외한 판매 수익이 노숙인에게 돌아가는데, 노숙인 이외에는 판매할 수 없다는 게 무엇보다 독특한 시스템이다. 물론 노숙인이 판매하는 잡지가 우리나라에 없었던 건 아니다. 이태헌 총무(노숙인당사자모임)는 “과거 ‘사랑의 전화’에서 나온 잡지를 팔면서 도움을 얻었었는데 중간에 흐지부지 돼 아쉽다”며, “‘빅이슈’는 그 때와 시스템 자체가 다른 만큼 사회적 기업의 정신을 이어가려면 더욱 철저한 준비 과정과 뜻 맞는 사람, 조직간의 연대가 필수”라고 주문했다.
영국에선 이미 ‘빅이슈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잡지 사업은 물론, 노숙인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대표적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는 10월 창간호 발행을 앞둔 한국판 ‘빅이슈’의 로드맵은 뭘까. 최 교수는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는데, 여기에 사회복지사의 전문성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 세 가지는, ▲사회복지, 특히 빈민·노숙인 분야에 대한 이해, ▲언론, 특히 잡지라는 매체에 대한 전문성, ▲경영마인드, 특히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자질이다. “‘빅이슈’의 창간 시도는 이번 이외에도 여러 번 있었”던 만큼 ‘빅이슈’의 정신에 동의하는 사회복지사 동지들의 발 빠른 참여도 요구된다.
상품성보다 ‘나눔문화의 총화’라는 상징성
‘빅이슈’는 영화 소재로 쓰일 만큼 고유의 문화적 코드와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화 ‘원스’의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는 장면. “‘빅이슈’ 살래요?” 쓸쓸한 더블린 거리에서 퍼진 그녀의 음성이 경제적으로 차가운 계절을 경유하고 있는 서울로 온다면 어떨까. 꼭 경기상황이 아니더라도, 세계화 흐름 속에 자본의 이동만큼 노동의 이동이 수월해야 한다는 가치는 2009년 한반도 남단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한국 내 노숙인의 코드를 이주노동자 코드까지 연결하는 이유는 ‘빅이슈’의 국제적 이미지 때문이다.
데이비드 베컴, 비욘세,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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